1979년 군부 쿠데타의 주모자 노태우 전 대통령 88세로 별세

1979년


1979년 쿠데타에서의 그의 역할,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유혈 진압에 관여한 것,

그리고 전 대통령이 직접 뽑은 후계자로서 대통령직에 오른 것을 볼 때, 노 대통령의 유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낌없는 것이었다.

전두환(현 90세)과 함께 1979년 쿠데타의 주모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일 별세했다. 

그는 88세였다.노 대통령은 10년 넘게 기관지 질환과 소뇌 위축으로 투병해 왔다. 

20일 오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됐다. 

그는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여 만인 오후 1시 46분에 사망했다.

노 전 대통령은 1979년 전 대통령과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42주년을 맞아 별세해 천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일파의 정권 장악의 물꼬가 트였다.

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 경북 달성군(현 대구시)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에서 수학했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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육군사관학교 졸업에 이어 1955년 소위로 임관했다.

또 다른 11학번 동기인 노씨와 천씨는 자신들이 권력기지를 건설할 때 사용했던 하나회라는 비밀결사회를 군 내부에 설치했다. 

두 사람은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자신의 첩보원으로부터 치명상을 입은 뒤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.

천 의원은 안보사령탑, 체육부 장관, 내무부 장관, 국회 의원, 여당인 민주정의당 대표를 여러 차례 역임하며 노 대통령을 오른팔로 대통령직에 올랐다.

1987년 6월 개헌과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에 응한 사람은 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노 전 대통령이었다. 

노 대통령은 6월 29일 성명에서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였다. 하지만 그것은 노 대통령은 12월 김대중, 김영삼 이후 반대 표를 나누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.

1979년 쿠데타에서 그의 중요한 역할,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유혈 진압에 관여한 것,

그리고 전 대통령이 직접 뽑은 후계자로서 대통령직에 오른 것을 볼 때, 노 대통령의 유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낌없는 것이었다.

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정권의 업적에 대해 어느 정도 공로를 인정받았다. 

정부는 노 대통령이 이끄는 노르폴리틱(Nordpolitik)에서 사회주의 정부에 외교적 제안을 하고,

남북한의 유엔 동시입국을 주선했으며, 제5공화국으로 알려진 천 대통령 정부가 저지른 부패와 탄압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다.

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이어 1995년 11월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구속돼 전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. 

1997년 4월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징역 17년과 벌금 2688억 원(2억3039만 달러)을 확정했다. 

그해 1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면을 통해 출소했다. 

노 전 대통령은 전씨와 달리 2013년 벌금형을 전액 납부했다.

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5차례나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광주를 방문해 광주 대학살에 대해 사과했다. 

재헌은 시내에 있는 동안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립5·18묘지에 참배하기도 했다.

사회뉴스

노 전 대통령은 아들 재헌 동아시아문화원장과 함께 부인 김옥석 여사와 딸 노소영 여사의 유족이다. 

그의 경종은 10월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릴 예정이다.